세월이 흐르는 걸 잊을 때가 있다 사는 게 별반 값어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편 같은 삶의 유리 조각들이 처연하게 늘 한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무섭게 반짝이며

 

나도 믿기지 않지만 한두 편의 시를 적으며 배고픔을 잊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나보다 계급이 높은 여자를 훔치듯 시는 부서져 반짝였고 무슨 넥타이 부대나 도둑들보다는 처지가 낫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외로웠다

 

푸른 색.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더럽게 나를 치장하던 색, 소년이게 했고 시인이게 했고 뒷골목을 헤매게 했던 그 색은 이젠 내게 없다 섭섭하게도

 

나는 나를 만들었다 나를 만드는 건 사과를 베어 무는 것보다 쉬웠다 그러나 나는 푸른색의 기억으로 살 것이다 늙어서도 젊을 수 있는 것 푸른 유리조각으로 사는 것

 

무슨 법처럼, 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오늘 학교에서 0교시 내내 퍼질러 자다가 종 쳐서 일어났다 역시 종 소리는 사는데 그닥 도움이 되진 않는 것 같더라고 그리고 내 여신이랑 니키 현질한 이야기 좀 하다가 문득 앱스토어에 들어갔더니 미련을 버리려고 한 아날로그 파리 필터가 오늘도 인기 유료 어플 1 위를 달리고 있더라 내가 멍청했지 아무 생각 없이 USD1.09 이 버튼을 누르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얼마 전 니키로 결제 전적을 생성했다는 거 내 멍청한 아이폰은 다른 건 다 까먹어도 내 카드 번호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는 거 있잖아 그걸 잊으면 안 됐어 내가 손을 쓸 시간도 없이 아날로그 파리는 내 핸드폰 배경에 안착했고 USD1.09는 열기 버튼으로 바뀌었으며 뒤이어 체크카드 결제 완료 되었습니다 하는 문자가 왔으니까 말 다 했지 이 모든 일이 1분도 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라고 물론 늦어도 빨라도 언젠가는 살 어플이었지만 내 카메라에 찍혀 줄 어여쁜 애인이라거나 감성을 잔뜩 담아 찍을 풍경이라곤 1도 없는 이 나이 이 시기에 그것도 돈 빠져 나간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 한 그 상태로 다운로드 하고 싶지는 않았어 이 어플 하나가 내 주위의 모든 예쁜이를 당황 시킬 거라곤 그 누구도 생각치 못했을 거라고 아무튼 그래서 1교시 내내 친구 사진 좀 찍어 주고 안 어울리게, 꼴에 또 고삼들이라고 수능 분위기 팍팍 나는 교실 좀 찍고 난 나왔다 집으로 왔다는 소리지

 

제발 집에 갈 때 교복으로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다못해 담요라도 두르게 해 줘 죽을 것 같아

 

HONNE - Warm On A Cold Night

 

일부러 가사가 있는 걸로 가지고 왔다

솔직히 인간적으로 사람이 이렇게 분위기 잔뜩 넣은 노래 만들면 심장이 찢어질 것 같잖아

나에게는 위기만 있다

후드려 맞는 기분이다 혼네 최고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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